이 대통령, 3·15 유족에 정부 첫 공식사과…허리 숙이며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
핵심 요약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3월 15일 경남 창원 국립3·15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6주년 3·15의거 기념식에서 3·15 희생자 유가족에게 정부 차원의 첫 공식사과를 표명했다. 현직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26년 만이며, 이날 행사에는 유공자·유족과 관계자 등 약 700명이 모였다. 대통령은 발언 중 연단에서 한걸음 나와 허리를 깊이 숙이며 사과를 재확인했고, 기념식 현장에는 박수와 눈물이 교차했다.
핵심 사실
- 일시·장소: 2026년 3월 15일, 경남 창원 국립3·15민주묘지에서 제66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 대통령 사과: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권력에 의해 고통을 겪은 3·15 희생자 유가족에게 정부를 대표해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 참석 규모: 유공자·유족·학생·각계 대표 등 약 700여명이 현장에 참석했다.
- 역사적 해석: 대통령은 3·15의거가 4·19혁명으로 이어졌고 이후 부마항쟁·5·18·6월항쟁·촛불혁명 등으로 연결된다고 평가했다.
- 역대 참석: 현직 대통령의 3·15 기념식 참석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26년 만이다.
- 국가기념일 지정: 3·15의거는 2010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바 있다.
- 상징적 연결: 대통령은 3·15 정신이 2024년 12월 3일 밤의 사태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언급했다.
사건 배경
3·15의거는 1960년 3월 15일 당시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한 마산 시민과 학생을 중심으로 발생한 민주화 운동으로, 당시 경찰 발포 등으로 16명이 희생된 것으로 기록된다. 당시 마산상업고등학교 1학년 김주열 군이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발견되면서 사건은 전국적 분노로 번져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3·15의거는 한국 현대사에서 국민주권과 민주화의 출발점 중 하나로 평가되며, 이후 여러 저항운동과 연계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이후 3·15의거는 2010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지만,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는 이번이 처음이다. 역대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은 드물었고, 특히 현직 대통령의 공식 사과는 과거 국가 권력의 책임을 인정하는 의미에서 상징성이 크다. 기념사업회와 유가족 단체는 오랜 기간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 정부 사과를 요구해 왔다.
주요 사건
기념식은 추도와 기념사 중심으로 진행됐으며, 이재명 대통령은 연단에서 3·15 희생자의 숭고한 희생을 언급한 뒤 유가족에게 직접 사과의 뜻을 밝혔다. 발언 도중 그는 연단 옆으로 나아가 허리를 깊이 숙여 고개를 숙였고, 현장에서는 박수와 눈물이 교차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기념사업회장과 일부 유가족은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대통령은 3·15의거가 4·19혁명을 촉발했고, 이후 부마항쟁·5·18·6월항쟁·촛불혁명 등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하며 3·15 정신을 현대적 맥락에 연결했다. 특히 2024년 12월 3일 밤 발생한 사태를 예로 들며 ‘국민 주권의 지혜’가 위기에서 나라를 지켜냈다고 평가했다. 이날 참석자에는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박완수 경남지사, 김두관 전 경남지사, 김경수 전 지사(더불어민주당 경남지사 후보 확정 후 사퇴한 직속 위원장) 등이 포함됐다.
이번 사과는 공식 서한이나 법적 배상 조치 발표를 수반하지는 않았으나, 정부 대표자의 공개 사죄는 역사적 책임 인식의 표현으로 해석됐다. 현장 반응은 대체로 감정적 공감이 우세했으나, 향후 실질적 조치 요구가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분석 및 의미
첫째, 이번 사과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정부의 공식 사과는 과거 국가 폭력에 대한 공개적 인정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정당성과 도덕적 책임을 분명히 한다. 이는 유가족의 명예 회복과 역사적 기록 재정립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상징적 사과가 곧바로 법적·정책적 보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므로 후속 조치가 관건이다.
둘째, 정치적 파장은 복합적이다. 현직 대통령의 참석과 사과는 진보 진영의 역사 해석을 강화하는 동시에 보수 진영에서는 정치적 이용 가능성을 경계할 여지를 남긴다. 정치적 계산을 배제한 순수한 역사적 성찰로 받아들여질지, 여타 정치적 사건과 연동되어 논쟁으로 비화될지는 향후 반응에 달려 있다.
셋째, 사회적·교육적 효과가 기대된다. 공식 사과와 대통령의 언급은 학교 교육, 공공기록, 기념사업의 방향에 영향을 미쳐 3·15의 의미를 후대에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역사적 사실의 정확한 전달과 진상 규명 노력 병행이 필요하며, 기념 사업의 지속적 지원 여부가 효과를 좌우할 것이다.
비교 및 데이터
| 연도 | 대통령 참석 여부 | 비고 |
|---|---|---|
| 2000 | 참석 (김대중) | 현직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26년 전) |
| 2010 | 국가기념일 지정 | 3·15의거가 국가기념일로 지정됨 |
| 2026 | 참석·공식사과 (이재명) | 정부 차원의 첫 공식사과 |
위 표는 핵심 시점을 간략 비교한 것으로, 2026년 기념식은 대통령 참석과 정부 공식사과라는 두 가지 점에서 기존 기록과 다른 의미를 갖는다. 행사 참석자는 약 700명으로 보고되었으며, 이는 유공자·유족·지역 인사·학생 등이 포함된 규모다.
반응 및 인용
기념식 현장과 이후 반응은 대체로 감정적 공감과 정책적 요구의 병존 양상을 보였다. 유가족과 기념단체는 사과를 환영하면서도 구체적 진상 규명·법적 조치 요구를 동시에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에서는 환영·비판이 엇갈리는 가운데 향후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으로서, 국가권력에 의해 큰 아픔을 겪은 3·15의거 희생자 유가족분들께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이재명 대통령
이 발언은 정부의 공식적 책임 인정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대통령은 이어 3·15의 역사적 의미와 현대적 연계를 강조하며 기념식의 상징성을 부각시켰다.
“여러분의 그 숭고한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다.”
이재명 대통령
이 표현은 유가족의 명예 회복과 사회적 기억의 지속을 약속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현장에서는 박수와 눈물이 교차하며 감정적 동의를 드러냈다.
“3·15 의거가 우리 역사에 남긴 교훈은 저절로 오는 민주주의는 없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
대통령은 이 문장을 통해 3·15 정신을 현대 시민운동과 연결시키려는 의도를 명확히 했다. 다만 이러한 역사적 연결을 둘러싼 해석 차이는 앞으로 학술·정치적 논쟁을 촉발할 수 있다.
불확실한 부분
- 이번 공식사과가 법적 배상이나 진상조사 재개 등 구체적 제도적 조치로 바로 이어질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 대통령의 역사 해석(2024년 12월 3일 언급 등)을 둘러싼 정치권 반응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는 불확실하다.
- 유가족과 기념단체가 요구해온 세부적 해결책(예: 명예회복 절차·기념사업 예산 확대 등)에 대한 정부의 후속 입장과 실행 계획은 공개되지 않았다.
총평
이번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과 정부 공식사과는 한국 현대사에서 상징적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유가족과 시민사회는 사과를 환영하면서도 실질적 조치로 이어질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향후 정부가 법적·제도적 후속 조치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이 행위의 역사적 가치가 달라질 것이다.
정치권과 학계는 이번 사과를 계기로 과거 국가행위의 책임 문제와 역사기억의 공적 정착에 대한 논의를 재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독자는 이번 사과가 단순한 상징을 넘어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어떤 형태로 구현되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출처
- 경향신문 (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