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 관객 ‘왕과 사는 남자’ 재조명, 엄흥도 추모비는 마을의 골칫거리

핵심 요약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500만 관객)으로 조명받는 충신 엄흥도를 기리는 원강서원과 원강서원비가 울산 울주군 삼동면 하작마을에 있다. 이 비석과 서원은 1799년 사당 설립에서 출발해 1817년 서원 승격, 1820년(순조 20)과 1833년 비문과 증직 기록이 남아 있다. 1994년 온산국가산업단지 조성 때 현재 위치로 이건됐고, 1998년 10월 울산시 지정 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문화재 보호에 따른 개발 제한과 재산권 침해를 우려하며 이전을 요구해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핵심 사실

  • 대상 유물: 증공조참판 엄공 원강서원비와 원강서원(울산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하작마을). 위치는 마을 입구 비각 안쪽이다.
  • 역사적 연대: 원강사 설립 1799년, 원강서원 승격 1817년, 비문 제작 1820년(순조 20), 이후 1833년 증직 기록 추가.
  • 이건·지정: 1994년 온산국가산업단지 조성 과정에서 하작마을로 이건됐고, 1998년 10월 ‘증공조참판 엄공 원강서원비’는 울산시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 연관 인물: 엄흥도(단종의 주검을 수습한 충신), 비문 작성자·서적(조진관·이익회·이조원 등으로 전해짐).
  • 최근 상황: 500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 영향으로 관심이 증가했으나, 삼동면 주민들은 문화재 주변 500m 규제(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를 이유로 울산박물관 등으로의 이전을 요구했다.
  • 문중 입장: 소유주 영월엄씨 문중은 현재 위치의 역사적 의미와 보존 현실성을 들어 이전에 난색을 표했다.
  • 거리 관계: 원래 거처였던 금곡마을과 하작마을은 약 3km 떨어져 있으며, 일부 선대 묘소가 금곡마을에 남아 있다.

사건 배경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뒤 후손들이 안정을 찾기까지 신분을 숨기고 여러 지역을 떠돌았다. 전승에 따르면 충남 공주, 경북 군위·경주 등을 거쳐 울산으로 정착한 흔적이 남아 있고, 후손들이 지역에서 수백 년에 걸쳐 제향을 이어왔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친 원강사 설립과 서원 승격은 지역 유력 문중의 역사적 위상을 반영한다.

20세기 후반 산업화 과정에서 온산국가산업단지 조성이 일대 지형과 주민 구성을 바꾸었고, 이로 인해 문화재의 위치를 옮기는 이건 작업이 진행됐다. 문화재 이건은 유물 보호와 산업개발 사이의 균형 문제를 드러내며, 이후 문화재 지정(1998년 10월)이 되면서 법적 제약이 새로 생겼다. 해당 법은 문화유산 주변 500m를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으로 정해 개발행위를 제한한다.

주요 사건

지난 20일 현장 확인 결과, 하작마을 입구 비각에는 두 기의 비석이 나란히 서 있었다. 앞쪽은 원강서원비 본체, 뒤쪽에는 훗날 증직된 공조판서 기록을 새긴 비석으로 구성돼 있다. 비석의 비문은 조진관이 짓고 이익회가 글씨를 썼다는 전통적 기록이 전해진다.

마을 주민들은 지난해 초 집단 민원을 통해 비석 이전을 요구했다. 주민들이 우려하는 핵심은 문화재 보호 구역 지정으로 인한 재산권 침해 가능성과 향후 건축·토지 이용의 제약이었다. 소유주인 영월엄씨 문중은 역사적·종교적·문중 관습상의 이유로 이전에 동의하지 않았고, 논의는 교착 상태에 빠졌다.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배우 유해진 주연)의 흥행이 엄흥도에 대한 공적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현지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일부는 역사적 자산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보고, 다른 주민은 당장의 개발권과 재산권을 우선시하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문화재 보존과 지역 주민 권리 사이의 충돌이 표면화됐다.

분석 및 의미

첫째, 이 사례는 지역 역사기억과 근대 산업화가 충돌하는 전형적 사례다. 1990년대 산업단지 조성으로 인한 이건은 문화재의 물리적 보존을 일부 달성했지만, 지역 공동체와의 합의 과정은 충분치 않았다. 결과적으로 문화유산 지정은 보존 의무를 강화했지만 주민의 생활권과 충돌하면서 갈등의 씨앗이 됐다.

둘째, 영화에 의해 촉발된 공공의 관심은 문화재 가치 재평가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문화재의 공적 활용(전시·교육)과 사유지 보호, 문중 전통의 존중을 동시에 고려한 관리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갈등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중앙·지방 행정은 문화재의 보존과 지역 주민의 재산권 보호를 균형 있게 조정해야 한다.

셋째, 법적·제도적 측면에서는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 규정(반경 500m 등)이 지역 개발권에 미치는 영향을 정밀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 문화재 지정 후 보존 관리 계획이 부재하거나 문중·주민과의 소통이 약하면, 잠재적 분쟁이 장기화될 수 있다. 따라서 매뉴얼에 근거한 이행 계획과 보상 체계가 병행되어야 한다.

비교 및 데이터

연도 사건
1799 원강사(사당) 설립
1817 원강서원으로 승격
1820 ‘증공조참판 엄공 원강서원비’ 비석 제작(순조 20)
1833 엄흥도 공조판서 증직 기록 추가
1994 온산국가산업단지 조성으로 하작마을로 이건
1998.10 울산시 지정 문화유산 등록

위 표는 원강서원과 비석 관련 주요 연혁을 연대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맥락적으로 18~19세기 문중 중심의 제향 활동이 20세기 산업화 과정에서 물리적 이동과 행정적 재분류를 겪었음을 보여준다.

반응 및 인용

문중 대표와 주민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문중은 역사적 연고와 보존 현실성을 이유로 현 위치의 의미를 강조했고, 주민들은 재산권과 개발 제한을 우려했다.

“현재 위치는 문중 입장에서도 의미가 있고, 훼손 우려 탓에 비석 이전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영월엄씨충의공후손 울산종중 회장 엄주홍

“재산권 침해가 우려된다.”

삼동면 주민

불확실한 부분 (Unconfirmed)

  • 엄흥도가 후손들과 함께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로 울산에 정착했는지에 대한 세부 이동 경로는 문헌상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 주민 민원이 실제로 법적 절차로 이어질 경우 향후 처리 방식과 구체적 보상·대체 방안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 영화 흥행 이후 원강서원비에 대한 외부 관람·활용 계획에 대해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공식 검토가 진행됐는지에 대한 공식 문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총평

원강서원과 원강서원비는 지역 역사성과 문중 전통을 보여주는 유물로서 가치가 분명하다. 그러나 1994년 이건과 1998년 문화유산 지정 이후 발생한 주민 갈등은 문화재 보존이 단순한 등록으로 끝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향후 보존 정책은 문중의 역사적 바람과 지역 주민의 재산권 보호, 공공의 문화 향유를 균형 있게 연결해야 한다.

실천적 방안으로는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재청이 참여하는 중립적 협의체 구성, 보존·관리 매뉴얼 수립, 문중·주민을 위한 보상과 교육 프로그램 마련이 필요하다. 영화 등 외부 관심을 계기로 공론화와 합의 기반의 장기적 보존 계획을 마련할 때다.

출처

댓글 남기기